‘삶은 가지치기’

이건 내가 좋아하는 비유다.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지 않는 나무, 즉 새로운 가지를 뻗지 않는 나무는 죽은 나무.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 나무는 무질서하고 쓸모를 잃는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자르다간 큰 고통이 뒤따른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가지치기를 하는 사람의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 어떤 가지가 가치가 있는지 바라보는 건 사람의 마음이니까.

오랫동안 방황함

나는 이 가지치기를 솔직히 잘하지 못했고 많이 헤맸다. 그러다 보니 가지치기란 개념으로 인생을 반성하게 된 것이고 말이다.

“독하게 산다고 성공하는게 아니다.” — 카카오 CEO 김범수

엔지니어의 길을 걷는 초반 나는 긴장되고 위축된 마음과 마음대로 컨트롤 되지 않는 내 행동에 대해 “어쩔 수 없다” “참아야 한다” “이길 밖에 없다” “이게 내 한계인가? 하지만 더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무조건 버티면서 살았다. 돌이켜보니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오랫동안, 그리고 영리하게 싸울 수 없었다. 난 마음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하게 된다. 다른 멀리 태평양에 떠다니는 배에서 엔지니어 일을 하기도 했고 야간에만 고요하게 근무하는 직장을 택하기도 했다.

고맙게도 전 직장의 CTO분은 나의 마인드 컨트롤을 도와주시려고 노력하셨지만, 이성과 가슴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그리고 2022년 3월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강철의 전사가 아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섬세했다.

유연함이 너무나 간절하게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각오가 섰다. 그러자 쓸모없다고 믿었던 가지에 있었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다루겠다.

그렇게 여기까지 살아왔고 이제 나라는 사람의 매뉴얼 (2022.06.05)

내가 엔지니어가 된건 다음의 이유에서다.

  1. 끝없이 배우기 위해서
  2. 세상과 소통하는 좋은 도구를 얻기 위해서

내가 배우는걸 좋아하는 이유

몰입에 대한 갈망과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갈망 때문이다. 지금도 몰입하지 못할 때, 호기심이 없는 환경에서 살아갈 때 고통이 크다. 내 삶에 대한 의사결정에 60%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좀 더 나이를 먹고 나면 변할지 모르겠지만 처음 이 글을 썼던 2019년에도 저널을 업데이트 중인 2022년에도 그렇다.

소통의 도구를 얻고 싶어하는 이유

인정받기 위해서다. 아무도 골방의 현자를 인정받지 못한다. 세상과 소통하고 기여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나 스스로도 흥미가 없고 타율이 떨어지는 관점과 도구로 세상과 싸우고 싶진 않았다. 나는 엔지니어에 흥미도 있었고 타율도 좋아 보였다.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을 얻기 위해서다. 사람들마다 불안을 느끼는 요소가 다른데, 경제활동이 인류사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보고 나 또한 참여자로서 경제적인 해자가 없다고 느낄 때 불안을 느낀다. 해자가 있다고 확신할 때 현실의 불안을 가볍게 넘기고 시간을 벌고 더 많이 관계에 투자할 수 있다. 때문에 경쟁력 있는 도구를 얻고 싶다는 갈망이 크고 엔지니어의 길은 그걸 제공해준다.
평생을 안고 갈 수 있는 정체성을 얻기 위해서다. 어떤 사람은 가정이란 정체성으로 자신을 채우겠지만 나는 그럴 계획이 없고 그렇게 남은 인생의 여유 공간에서 쾌락과 예술적 만족만 쫒으면서 살기엔 인생이 너무 길다. 그것도 너무 😇

내 커리어의 롤모델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사람은 참 많지만, 짧게 한 사람만 언급하고 싶다. 내 첫 직장은 주력인 ICT 리소스 모니터링 솔루션을 100개가 넘는 사이트에 납품했었고 규모가 커지면서 회사는 유지보수 사업을 전담할 새로운 법인을 고민하던 시점이었다.

그런 시점에 주력 제품의 프로덕트 매니저가 있었다. 그 사람은 제품에 코어 컴포넌트의 담당하는 팀의 리더였고 코딩도 했다. 거의 다른 컴포넌트의 로직과 연관이 있었기에 문제가 터질 때마다 콜을 받았었다. 업무 관리로 사용했던 Redmine에 그 사람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날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렇게 굴러갔던 조직이나 제품은 문제가 있는 거겠지만)

그의 얼굴을 보러 갈 때마다 언제나 열정이 느껴졌고 바쁜 일정에도 침착함과 Warm 한 느낌을 잃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필드 엔지니어로서 다른 부서였지만 그 사람과 나눈 모든 대화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대화에서 나를 발전시켜주기 위한 배려심과 자신의 제품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엔 그 단어를 몰랐지만, 그는 확실히 소프트웨어 장인이었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존중을 넘어 사랑인가 동경인가? 😅 남자였는데… 어쨌든 나는 오늘도 집을 나서며 그 사람을 닮을 수 있도록 있기를 다짐한다. 그리고 새롭게 적응할 조직에서 그런 사람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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